왕산골 한옥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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왕산골한옥 13-04-02 09:38
봄은 봄이다. 조회수 : 4,464 | 추천수 : 0

여기 산골의 겨울은 매년 그렇듯이 혹독한 추위 그 자체다 .

 

강원도 강릉 대관령 넘어 강릉시로 들어서는 산 기슭이기

때문이다 .

 

한 겨울에 이 산골에서 할 수 있는 소일거리라는 것이 딱히

별로 없다 .

그래서 불과 얼마 전까지도 마을 주민들은 ,

마을회관 같은 곳에 모여서 ,

국민 대표 오락인 " 고스톱 " 으로 주로 소일하고 지낸다 .

그러나 나는 그 오락에 별로 흥미가 없으니 ,

아니 흥미가 없다기보다는 ,

과거가 들통 날 일이지만 ,

수십 년 전 만 하더라도 밤낮으로

경치 좋은 시골식당으로 ,

토종닭 백숙 집으로 ,

호텔 사우나로 ,

거래처 창고로 ,

사무실 소파에서 .........................

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,

늘 그 오락에 빠져 살았던 시절이 있었길래 ,

이젠 그 꼬락서니를 외눈으로도 보기가 싫어졌다 .

그래서 그 " 고스톱 " 을 나는 주민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.

 

대신

길고 긴 겨울에 뭐 딱히 소일거리를 찾아야 했는데 ,

그것이 서각 ( 書刻 ) 이라는 것이었는데 ,

 

잘 마르고 결이 좋은 나무를 구해서 ,

( 나무는 주로 박달나무 , 소나무 , 스기목 , 마디카 , 오동나무 ,

벚나무 등 )

필요한 글귀를 써서 ,

그 중 잘 썼다고 판단되는 것을 골라서 ,

복사를 해가지고 ,

미리 잘 손질해 놓은 나무판에다가 ,

미리 쑤어놓은 풀로 골고루 잘 발라서 정성들여 붙이고 ,

( ) 을 한다 .

난 요즘엔 주로 양각 ( 陽刻 ) 을 주로 하는데 ,

음각 ( 陰刻 ) 을 하면 글씨가 주는 의미를 제대로 각 ( ) 으로

표현해 내는데 는 더 좋은 것 같은데 ,

음각의 실력이 아직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.

 

어쩌다 시간만 나면 ,

가끔씩 가까운 서원이나 , 향교 , 정자 , 사당 등에 가보는데 ,

거기에는 상량문 , 중수기 , 답사기 , 칭송 글 , 비석 ,

옛 선조들의 글들을 보게 되는데 ,

어찌나 각이 정교하고 미려한지 혀가 내 둘린다 .

더군다나 그 당시 현판의 각을

주로 스님들이나 노비들이 각을 했다고 써져 있는데 ,

글의 뜻과 글을 쓴 사람의 정신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고는

어떻게 저리도 정교하게 각을 할 수 있을까 ? 하고

놀라지 않으 수 없다 .

그야말로 장인이다 .

그런데다가 노비 같은 경우는 글씨를 잘 몰랐을 수도 있는데 ,

어찌 저렇게 각을 잘 할 수 있단 말인가 ?

아무리 시간적인 여유가 많다 하더라도

글자 하나하나를 보면 글씨마다에 혼이 깃들어 있는듯하다 .

내가 계속 연습에 연습을 계속하면 저 밑동만치는

따라갈 수 있을라나 ? 하고

되물어 보곤 한다 .

 

오는 겨울엔 더 많은 서각을 해 봐야겠다고 다짐도 해 본다 .

 

봄은 봄이다 .

그 혹한의 겨울이 아직도 심기에 남아 있는데 ,

바람의 숨결부터 다르다 .

우둔한 인간인 내가 이렇듯 봄기운을 느끼는데 ,

인간보다 수 곱절 오래 견디어 온 자연의 촉감은

이미 인간이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의 훨씬 앞서

봄을 점지하고 준비하고 있었을 게다 .

그게 인간의 오감에 다다랐을 때에는 ,

자연은 인간이 느끼고 있는 모습을 보고

짐짓

빙그레 웃고 있을지니 ,

자연의 섭리가 왜 위대하다는 것을 새삼 깨 닳는다 .

 

그래도 봄은 봄이다 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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