In a specific locality, share Stories
왕산골한옥 13-04-02 09:38 | |
봄은 봄이다. 조회수 : 4,622 | 추천수 : 0 | |
여기 산골의 겨울은 매년 그렇듯이 혹독한 추위 그 자체다 .
강원도 강릉 대관령 넘어 강릉시로 들어서는 산 기슭이기 때문이다 .
한 겨울에 이 산골에서 할 수 있는 소일거리라는 것이 딱히 별로 없다 . 그래서 불과 얼마 전까지도 마을 주민들은 , 마을회관 같은 곳에 모여서 , 국민 대표 오락인 " 고스톱 " 으로 주로 소일하고 지낸다 . 그러나 나는 그 오락에 별로 흥미가 없으니 , 아니 흥미가 없다기보다는 , 과거가 들통 날 일이지만 , 수십 년 전 만 하더라도 밤낮으로 경치 좋은 시골식당으로 , 토종닭 백숙 집으로 , 호텔 사우나로 , 거래처 창고로 , 사무실 소파에서 ......................... 등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, 늘 그 오락에 빠져 살았던 시절이 있었길래 , 이젠 그 꼬락서니를 외눈으로도 보기가 싫어졌다 . 그래서 그 " 고스톱 " 을 나는 주민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.
대신 길고 긴 겨울에 뭐 딱히 소일거리를 찾아야 했는데 , 그것이 서각 ( 書刻 ) 이라는 것이었는데 ,
잘 마르고 결이 좋은 나무를 구해서 , ( 나무는 주로 박달나무 , 소나무 , 스기목 , 마디카 , 오동나무 , 벚나무 등 ) 필요한 글귀를 써서 , 그 중 잘 썼다고 판단되는 것을 골라서 , 복사를 해가지고 , 미리 잘 손질해 놓은 나무판에다가 , 미리 쑤어놓은 풀로 골고루 잘 발라서 정성들여 붙이고 , 각 ( 刻 ) 을 한다 . 난 요즘엔 주로 양각 ( 陽刻 ) 을 주로 하는데 , 음각 ( 陰刻 ) 을 하면 글씨가 주는 의미를 제대로 각 ( 刻 ) 으로 표현해 내는데 는 더 좋은 것 같은데 , 음각의 실력이 아직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.
어쩌다 시간만 나면 , 가끔씩 가까운 서원이나 , 향교 , 정자 , 사당 등에 가보는데 , 거기에는 상량문 , 중수기 , 답사기 , 칭송 글 , 비석 , 등 옛 선조들의 글들을 보게 되는데 , 어찌나 각이 정교하고 미려한지 혀가 내 둘린다 . 더군다나 그 당시 현판의 각을 주로 스님들이나 노비들이 각을 했다고 써져 있는데 , 글의 뜻과 글을 쓴 사람의 정신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고는 어떻게 저리도 정교하게 각을 할 수 있을까 ? 하고 놀라지 않으 수 없다 . 그야말로 장인이다 . 그런데다가 노비 같은 경우는 글씨를 잘 몰랐을 수도 있는데 , 어찌 저렇게 각을 잘 할 수 있단 말인가 ? 아무리 시간적인 여유가 많다 하더라도 글자 하나하나를 보면 글씨마다에 혼이 깃들어 있는듯하다 . 내가 계속 연습에 연습을 계속하면 저 밑동만치는 따라갈 수 있을라나 ? 하고 되물어 보곤 한다 .
오는 겨울엔 더 많은 서각을 해 봐야겠다고 다짐도 해 본다 .
봄은 봄이다 . 그 혹한의 겨울이 아직도 심기에 남아 있는데 , 바람의 숨결부터 다르다 . 우둔한 인간인 내가 이렇듯 봄기운을 느끼는데 , 인간보다 수 곱절 오래 견디어 온 자연의 촉감은 이미 인간이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의 훨씬 앞서 봄을 점지하고 준비하고 있었을 게다 . 그게 인간의 오감에 다다랐을 때에는 , 자연은 인간이 느끼고 있는 모습을 보고 짐짓 빙그레 웃고 있을지니 , 자연의 섭리가 왜 위대하다는 것을 새삼 깨 닳는다 .
그래도 봄은 봄이다 .
|
Total Article : 194 |
194 | 또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. | 왕산골한옥 | 1,911 | 18-12-11 12:41 |
193 | 용담 | 왕산골한옥 | 11,622 | 15-09-25 12:41 |
192 | 나비바늘꽃, 백접초(白蝶草), 가우라 화이트. | 왕산골한옥 | 4,774 | 15-09-25 12:34 |
191 | 고맙네. 옥수수 | 왕산골한옥 | 4,695 | 15-09-24 20:39 |
190 | 2014년 희망찬 새해가 밝았습니다. | 왕산골한옥 | 89,856 | 14-01-01 09:56 |
189 | 가을 걷이 끝 ~~~ | 왕산골한옥 | 5,387 | 13-12-05 18:37 |
188 | 서리태 수확 | 왕산골한옥 | 5,233 | 13-11-17 19:46 |
187 | 가을이 점점깊어지네 | 왕산골한옥 | 5,302 | 13-09-25 16:24 |
186 | 가을비 내리는 날에 | 왕산골한옥 | 4,559 | 13-09-25 11:55 |
185 | 봄이 익는 사월초팔일에 상념 | 왕산골한옥 | 4,831 | 13-05-17 10:36 |
184 | 국회의사당 견학 | 왕산골한옥 | 4,820 | 13-04-22 13:51 |
183 | 享祠 祭典 執禮 | 왕산골한옥 | 4,511 | 13-04-22 12:49 |
봄은 봄이다. | 왕산골한옥 | 4,623 | 13-04-02 09:38 | |
181 | 마을과 관련한 모든 직을 내려 놓습니다. | 왕산골한옥 | 6,096 | 12-09-29 21:23 |
180 | 마을 이장은 이럴때 판단하기 어렵다. | 왕산골한옥 | 5,584 | 12-07-02 14:32 |
179 | 경 축 강릉개두릅 지리적표시 등록 | 왕산골한옥 | 6,436 | 12-03-03 18:59 |
178 | 정월 초사흘 날에 마음에 담은 글[13] | 왕산골한옥 | 6,326 | 12-01-25 11:06 |
177 | 임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. | 왕산골한옥 | 5,459 | 12-01-11 13:16 |
176 | 왕산골마을의 단풍 | 왕산골한옥 | 6,727 | 11-10-26 19:33 |
175 | 왕산골의 日常[39] | 왕산골한옥 | 6,763 | 11-09-05 16:39 |
|