지난 2월 9일 경인년 설날을 닷새 앞두고,
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.
입춘이 지나 곧 우수가 가까워오니,
당연히 봄비와 비슷하게 비가 내리려니 하고는
마음속으로는 아련한 소년시절의 낭만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다.
그러던 날 오후 늦게 쯤,
슬슬 진눈깨비가 내리기에,
“비 온 뒤 진눈깨비가 내려서 길이 미끄러워지면 괜히 자동차 다니는데
불편하기만 한데..............” 하면서,
방 아랫목이 따뜻해지라고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고는,
TV 기상예보를 보니,
영동지방에 3~15cm 정도의 대설주의보가 발효 되었다고 보도하고 있었다.
이 지역에서 15cm의 적설량이라는 것은 눈이 내렸다고 명함도 못 내미는 수준이다.
그래도 대충 30cm는 넘어서야,
오호라 ! 제법 왔는데..........하는 정도이다.
그래서 별 걱정 없이,
미처 마련하지 못한 설 차례 상의 제수물품을 내일 가까운 농협 마트에 가서,
마저 구입해야지……. 하고 무심히 밤을 지내고,
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어보니,
아뿔싸!
벌써 족히 50cm는 넘게 눈이 쌓여버렸다.
이미 뜰 돌 위로 눈이 올라와 있었고,
차는 4륜구동이라 해도 통행은 불가능해 보인다.
그런 가운데 계속해서 앞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눈이 쏟아지고 있다.
시간당 약 10cm이상 펑~펑~ 쏟아지는 것 같다.
급히 사람만 다니도록 토끼 길처럼 눈을 치고,
머리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면서,
잠시 집안에 들어와 앉아 있다가 방문을 열면,
또다시 아까 치웠던 길이 어딘지를 확인하기가 어렵다.
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밭인지 분간이 안 된다.
도깨비에 홀린 기분이다.
설날이 되어서야 조금은 소강상태를 보이는데,
이미 큰길까지 자동차가 나가기는 틀렸다.
준비 못한 제수품은 이 어찌할꼬?
조상님께서도 이런 천재지변의 상태를 이해하시리라고 자위해 보기로 하고,
그냥 있는 제수물품으로 차례를 지내기로 집사람과 의논했다.
내 평생에 길이 막혀 차례준비를 못해보기는 처음이다.
괜히 기상청에다 대고 화풀이를 해대는데,
“이 놈들아 !
그 비싼 첨단장비를 국민세금으로 준비하면서,
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과 같이 최첨단 기상장비에 의해,
가장 정확한 기상예측을 할 수 있다고 사기 쳐서 예산 집행 의결해서,
최신 장비만 마련해놓고,
매번 이따위 엉터리 예측만 해대고 있냐?..........”하면서,
하늘에다 대고 퉤,~ 퉤,~ 퉤,~ 침이나 뱉어버린다.
雪上加霜(설상가상)
결국은 설날과 그 이튿날만 빼 꼼하고는,
또 다시 약 15cm가량 더 눈이 쏟지는 바람에,
이번에 내려서 쌓인 눈은 모두 95cm~105cm 정도이니,
다른데서는 상상이나 되겠는가?
그 나마 지붕에서 떨어진 눈이 합친 곳에는 창문을 통해서는
바깥세상을 내다보는 것은 불가하다.
설날에 그 눈 속을 뚫고 서울에서 손녀가 내려왔다.
손녀가 눈구덩이를 파고 앉아서는 “자기가 사는 집”이라면서 좋아한다.
물경 일주일 만에 드디어 자동차가 큰 길까지 나갈 수 있는 길이 뚫렸다.
내가 큰 길까지 나가지 못해 고립되었던 것이,
왜 이리 섭섭한 것일까?
무슨 연유일까??
항상,
눈이 많이 내리면,
황홀함과 불편함이 교차한다.
세상의 모든이치가 모두 그런 것인가?...............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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